​잠시

2022

04.11

작은 방에서 혼자 


왜 다음 세계로 가지 못했는지.
아직도 여기까지인 건지
무엇을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답답함뿐입니다.
그래서 모든 작품들을 돌려놓고 숨겨 놓고 가려 놓았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작품들은 단 한 점도 정면을 보고 있지 않아요.
작업실 가득 그다음 세계에 다다르지 못한 그림들뿐인 이곳에서 그들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싶지 않습니다.
숨을 쉴 수가 없어요.
생각하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유하고 고뇌하는 것은 작업의 시작이자 기본이겠지만,
숨 막힘과 깨달음 사이의 막을 뚫어 버리지 못할 때 오는 좌절감을 매일 겪기엔 ..
커피가 더 필요합니다. 가득 아주 가득,

흘러넘쳐 바닥에 얼룩을 만들어도 상관없어요.

04.08

검은 입자 속에서


칠흑 같은 어둠이란 표현도 밝은 듯하다.

여긴 아무도 없고 아무도 날 보지 않는다.
작은 점들은 멀리 있지만 티클 같은 반짝임으로 시선을 멈추게 한다.
나의 감정을 움직인 저 덩어리는 감정이 있을까?

지금의 지혜로는 알지 못하고 지식이 있다 해도 알 수 없을 것 같은,
별의 파편들이 옆을 지나간다, 느린 것처럼, 빠른 것처럼.

멀리 선 반짝였던 거 같은데 곁에선 그렇지는 않는 거 같다.
중력과 멀어진 곳에선 비교할 기준도 없기에 속도와 태를 말한다는 건 가능하지 도 필요하지도 원하는 것도 아니였지만. 

이제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
적어도 별은 스스로 빛나지 않았음을 알았고 나의 그림이 암흑 속에 둥둥 떠다닌다 해도 소리 낼 사람 없으니
환상은 사라지고 자유가 가까이 있다.

04.06

그림과 그림

글씨를 잘 쓰는 사람과

글을 쓰는 사람은 완전히 다른 시간을 갖는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과

그림을 그리는 일 역시 같을 수 없다.

그림을 그려내려 하지 않는 그림이 가는 길은

진실을 향한다. 자랑하지도 않는다. 진정한 자신을 볼 수 있다.

허나, 어떤 의지와 집중력을 갖는다는 것은 보통의 삶 속에 결코 녹록지 않다.

그래도 가야 할때.

곁에 핀 풀을 쓰다듬고 곧고 신비로운 에너지를 품어 부지런히 전달하고 있는, 그러나 나의 두 손가락 움직임 만으로 쉬이 부러질것 같은 잎맥을 바라보며.

어떤 영혼이 날 도와줄 수 있을까

기필코 그림을 그려내지 않은 그림을

어떤 영혼이 알아볼 수 있을까

아니. 이건 중요하지 않지

수고 만으로 고되고 아름다운 시간으로 가득하기에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된다는걸 알고 있다.

03.11

​물이 괴어 있는 곳

들뜸은 허용되지 않는다
자잘한 감정의 조각들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
고요로 가득한 맑고 순수한 모습으로 울림의 막을 파괴하기 위해서

-

이것은, 빛에 의해 영롱히 빛나며 빛에 의해 증발되는 이슬방울의 맑음이 아니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곳에서

정화가 되려는 것인지 썩고 있는 것인지 지금은 알 도리가 없는

온갖 질퍽한 흙과 책임을 잃은채 버려진 쓰레기를 잘라낼 수 없어,

꾹꾹 눌러 함부로 올라오지 않도록, 침묵으로 무겁게 누르고 있는.

소금쟁이가 앉을 때 만이 결을 내주며 미세하게 찰랑이는 수면의 마음이었다

글을 적을때

 

03.03

그리고 이곳에 남긴다는건

편린을

혼자만의 방, 책상 앞 벽, 살포시 붙어있는 종이 위에

끄적임으로 존재하다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었지만

잊을 수도 있었지만

글을 적는 이가 그보다 빛이 다르게 움직이는 시대에 태어났기에

02.28

읽어야 할 수 있는 일

​읽기 위해 하는 일

​생각 역시 마찬가지

02.21

돌 위에, 나무 위에, 종이 위에 지금은 빛나는 하양 위에

손가락을 움직이는 순간

가끔 다리를 꼬기도 하는 일

​커피를 마시는 일

오랜 시간 고개를 떨구는 일

잠시 앞을 보기도 하는 일

​그리고 하염없이 흐르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