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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2022

12.27

 

가엽고 넘치는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이
옛날 옛적 손에 쥐었던 반짝였던 삽으로, 나무 손잡이 기둥에 새겨진 100여년 전 글을 읽고 중얼거리며 키보다 높고 깊은 웅덩이를 파 그 안에서 빠져나오지도 못해 고인 물에 발을 담그고 철퍽철퍽..
고라니 새끼가 지나가는 것도 참새가 알을 낳은 것도 모른 체

이젠 사랑인지, 집착인지, 자존심인지 스스로 생각 할 수도 분별할 수도 없어,

나의 조각아.. 나의 흔적아..

삽질의 흔적들을 손으로 느끼며, 

자족의 삶으로 삶이 묻어져버린걸 알았을땐. 

04.21

바램이 있다면

 

적어도 색칠공부가 되지 않길.

​쉽지 않아.. 

07.19

죽음을 준비하는 자세


자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미래에 관한 이야기

과거에 관한 이야기 

누구와도 다르기에 누구와도 같은 그녀는
자신의 죽음이 단정하며 오롯이 그녀 그대로이길 바랐다.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나 의지와 관계없이 만들어져 있는 세계 속에서, 선택하거나 모습을 다듬어 정리해 탄생 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죽음이란 걸 알았다.
그녀만의 일이 아니란 것도.
순리 대로라면 길지 않은 시간 앞에 그녀보다 가까운 사람들이 먼저 죽을 예정이기에 기꺼이 곁에서 외롭지 않게 도울 생각이었다.

반대가 된다 해도.
방법을 알지는 못했지만 죽으면 사라지는 것들로 정해보았다.

마음 쓰거나 친절한 일, 얼굴을 바라보고 온기를 전하는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만을 위한 몇 가지를 정해 부지런히 죽음을 준비했는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행위는 그림을 그리는 일 이였다.

 

왜일까? 

그녀는 그녀의 생각을 아직 보지 못했던 것들로 만들어내 느끼고 생각하게 만드는 일에 재능이 있었는데

그림을 그리거나 만들거나 땅을 파거나 얼리거나 겨울을 기다리거나 사라지게 만들거나 썩기 직전의 생물들의 마지막 인사를 만드는 일 들이였다. 
이러한 행위들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다른 이에게 이익이 없어
대부분 혼자만의 창작 시간으로 보내게 되었는데, 어떤 중요한 이유로 이익을 만들어 내는 현명함을 스스로 지워버린 탓이기도 했다.

중에, 그림이 가장 힘겨웠다. 

하지만 매일 좌절감을 느끼는 감정과 한계가 그녀의 망설임을 멈추게 했다.


그림은. 역사가 깊기에, 신선해 보이지 않을 수 있어서, 다름이라는 다름을 위하기 어려워서, 도구가 제한 적이어서, 경험과 기억으로 만들어져 있는 타인이 인식과 선입견으로 바라볼 확률이 높아서, 포장할 수 있는 매체가 없어서, 숨을 수 없어서, 길고 고요한 시간 속에 깨어나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가까이 올까 봐, 과거를 넘어서지 못할까 봐, 또,, 또,,,
더운 여름 배를 내밀고 잔잔한 바람에 털을 날리며 누워 있는 개에게 말했다.
“그래서 이게 무슨 상관인데, 나의 죽음을 만들어 가는 시간 속에 왜 이런 게 신경 쓰이는 건데, 이따위 고민들과 시선에 의해 내 손이 돌 이 된다면 이것이 나의 죽음을 슬프게 하는 일"

어쩌면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간단한 일이였다. 

숨쉬듯 잠자듯 바라보듯 거짓 없이. 

그림 속에는
사람인듯 사람이 아닌 것도 같았다.
살아 있는 것 같지만 살아 있지 않은 거 같기도 했다.
바다에서 숨을 쉴 수 있는 존재인듯했지만 많은 공기가 필요해 보이기도 했고 흙 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었던 거 같았지만 어디든 옮겨질 수, 움직일 수 있었다.
떠 있어 보이기도 한 존재들은 중력을 거슬러 스스로 떠 있게 된 건지 그렇게 되어버린 건지 알 수는 없었다.

신이 보였고 만들어낸 이야기가 보였다. 
모든 건 연결되고 분리되어 있었다.

정성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지 않았다. 
정확하지 않고 혼란스러운 세계. 

귀를 막았지만 소리를 막을 순 없는 모습이었다.

이 모습이라면 이 정도의 시작이라면

세상을 거침 없이 보고 있다고, 방 안이 영혼으로 가득 차 있다고.. 
소박하고도 아름다운 죽음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림 앞에 서서, 조용히 다른 손으로 거칠고 차가운 돌을 받쳐 가슴에 안았다.  

04.11

작은 방에서 혼자 


왜 다음 세계로 가지 못했는지.
아직도 여기까지인 건지
무엇을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답답함뿐입니다.
그래서 모든 작품들을 돌려놓고 숨겨 놓고 가려 놓았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작품들은 단 한 점도 정면을 보고 있지 않아요.
작업실 가득 그다음 세계에 다다르지 못한 그림들뿐인 이곳에서 그들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싶지 않습니다.
숨을 쉴 수가 없어요.
생각하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유하고 고뇌하는 것은 작업의 시작이자 기본이겠지만,
숨 막힘과 깨달음 사이의 막을 뚫어 버리지 못할 때 오는 좌절감을 매일 겪기엔 ..
커피가 더 필요합니다. 가득 아주 가득,

흘러넘쳐 바닥에 얼룩을 만들어도 상관없어요.

04.08

검은 입자 속에서


칠흑 같은 어둠이란 표현도 밝은 듯하다.

여긴 아무도 없고 아무도 날 보지 않는다.
작은 점들은 멀리 있지만 티클 같은 반짝임으로 시선을 멈추게 한다.
나의 감정을 움직인 저 덩어리는 감정이 있을까?

지금의 지혜로는 알지 못하고 지식이 있다 해도 알 수 없을 것 같은,
별의 파편들이 옆을 지나간다, 느린 것처럼, 빠른 것처럼.

멀리 선 반짝였던 거 같은데 곁에선 그렇지는 않는 거 같다.
중력과 멀어진 곳에선 비교할 기준도 없기에 속도와 태를 말한다는 건 가능하지 도 필요하지도 원하는 것도 아니였지만. 

이제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
적어도 별은 스스로 빛나지 않았음을 알았고 나의 그림이 암흑 속에 둥둥 떠다닌다 해도 소리 낼 사람 없으니
환상은 사라지고 자유가 가까이 있다.

04.06

그림과 그림

글씨를 잘 쓰는 사람과

글을 쓰는 사람은 완전히 다른 시간을 갖는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과

그림을 그리는 일 역시 같을 수 없다.

그림을 그려내려 하지 않는 그림이 가는 길은

진실을 향한다. 자랑하지도 않는다. 진정한 자신을 볼 수 있다.

허나, 어떤 의지와 집중력을 갖는다는 것은 보통의 삶 속에 결코 녹록지 않다.

그래도 가야 할때.

곁에 핀 풀을 쓰다듬고 곧고 신비로운 에너지를 품어 부지런히 전달하고 있는, 그러나 나의 두 손가락 움직임 만으로 쉬이 부러질것 같은 잎맥을 바라보며.

어떤 영혼이 날 도와줄 수 있을까

기필코 그림을 그려내지 않은 그림을

어떤 영혼이 알아볼 수 있을까

아니. 이건 중요하지 않지

수고 만으로 고되고 아름다운 시간으로 가득하기에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된다는걸 알고 있다.

03.11

​물이 괴어 있는 곳

들뜸은 허용되지 않는다
자잘한 감정의 조각들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
고요로 가득한 맑고 순수한 모습으로 울림의 막을 파괴하기 위해서

-

이것은, 빛에 의해 영롱히 빛나며 빛에 의해 증발되는 이슬방울의 맑음이 아니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곳에서

정화가 되려는 것인지 썩고 있는 것인지 지금은 알 도리가 없는

온갖 질퍽한 흙과 책임을 잃은채 버려진 쓰레기를 잘라낼 수 없어,

꾹꾹 눌러 함부로 올라오지 않도록, 침묵으로 무겁게 누르고 있는.

소금쟁이가 앉을 때 만이 결을 내주며 미세하게 찰랑이는 수면의 마음이었다.

글을 적을때

 

03.03

그리고 이곳에 남긴다는건

편린을

혼자만의 방, 책상 앞 벽, 살포시 붙어있는 종이 위에

끄적임으로 존재하다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었지만

잊을 수도 있었지만

글을 적는 이가 그보다 빛이 다르게 움직이는 시대에 태어났기에

02.28

읽어야 할 수 있는 일

​읽기 위해 하는 일

​생각 역시 마찬가지

02.21

돌 위에, 나무 위에, 종이 위에 지금은 빛나는 하양 위에

손가락을 움직이는 순간

가끔 다리를 꼬기도 하는 일

​커피를 마시는 일

오랜 시간 고개를 떨구는 일

잠시 앞을 보기도 하는 일

​그리고 하염없이 흐르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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